티스토리 뷰

이틀 후, 그보다 정확히는 36시간 후 둘째가 태어난다.

첫째가 태어났을 무렵에 아이의 이름을 짓는 것 때문에 굉장히 짜증이 났었는데, 이번에도 여지 없이 똑같은 갈등이 생겼다. 나는 아이 이름은 부모가 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반면에 사람 이름은 신중히 지어야 하니 성명학에 기초하여 작명소(철학관)에서 지어야 한다는 집안 어르신들의 의견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다.

왜 내가 낳은 아이의 이름을 작명소에 맡겨야 하는 것일까?

성명학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흔히 작명소에서 내세우는 주장은 "이름은 그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가장 큰 변수이고, 이름을 잘 지어야 그 사람의 인생이 편다."라는 것이다. 작명소에서 이름을 지어야 한다는 주위 어르신들의 주장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행여 이에 반대 입장을 펴면, 이름 잘못 지어서 아이가 불운해지면 어떻게 할거냐고 되묻는다.

이에 대해 나는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먼저, 성명학에 기초하여 이름이 붙여진 사람은 100% 행복한 삶을 사는가?
누구도 이에 그렇다고 답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심지어 돈을 받고 이름을 지어주는 작명소에서도...
"당신 작명소에서 이름을 지어준 수천명의 사람들이 모두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까?"

첫 번 째 질문의 답을 기초로 한 두 번 째 질문은,
그럼,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사는 사람에 대해 그 책임을 작명소에서 지는가?
삶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은 본인에게 있는 것이고, 본인 외에 책임이 따르는 타인은 바로 부모다.
그 사람의 인생에 대해 작명소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럼, 잘되면 성명학 때문이고 못되면 부모탓이네?

내가 씨를 뿌렸고, 나의 아내가 씨를 받았고, 아내가 열달 동안 고생하고, 극심한 아내의 산고를 통해 아이를 세상에 낳았다. 아이가 성인이 되기까지 잘 자랄 수 있도록 돌봐주고 혼신을 다하는 것도 우리 둘인 부모다. 아이가 독립할 수 있을 때까지 부모가 책임을 다한다.

권한에는 책임이 따르듯 책임이 있으면 권한도 있어야 한다.
아이의 이름에 대한 권한은 부모가 아이에게 가지는 거의 유일한 권한이다.
어째서, 책임은 부모에게 지우면서 권한은 성명학이 가져간단 말인가?
심지어 부모가 가져야 하는 그 권한도, 아이가 성장하여 자기 이름을 마음에 들어했을 때라는 조건이 붙는데도 말이다. (이름에 대한 가장 큰 권한은 이름을 가진 당사자에게 있어야겠지.)

얄팍한 돈벌이에 지나지 않는 성명학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안타깝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런 논리로 설득이 안되는 사람들과, 설득시키지 못하는 나 스스로이다.

더 논의를 해봐야겠지만 결코 성명학을 통해 이름을 지어야겠다고 한다면,
적어도 이 말은 할 작정이다.

"나중에 일이 생겼을 때 그 책임은 이름을 지은 작명소에 물으시고, 그게 안되면 작명소를 선택한 분에게 물으시고, 그것도 안되면 받아온 이름 중에 선택을 한 사람에게 물으세요. 저는 아이가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지만 잘못에 대한 책임은 안지겠습니다."

'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공지능의 발전에 대한 경계  (0) 2016.10.07
별 기행 - 양평 벗고개  (0) 2016.01.09
은희경 소설과 아델 음반  (0) 2015.12.12
댓글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글 보관함